국내 숨은 여행지

국내 숨은 여행지 : 정선 화암약수 트레킹 – 조용한 숲길 따라 만나는 전설과 치유의 샘

kkh2040 2025. 6. 29. 20:42

정선화암약수 트레킹

이름조차 조용한 숲, 정선의 깊은 품속으

강원도 정선은 마치 하나의 시간을 보존한 듯한 공간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 이곳을 찾으면 처음엔 정적에 당황한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이 고요함이야말로 진정한 ‘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중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적어 더욱 청정한 숲길, 화암약수 트레킹코스가 있다.

정선군 화암면의 깊은 산속에 자리한 화암약수는 수십 년 전부터 지역 주민들에게는 ‘병을 낫게 해주는 약수’로 알려져 왔다. 화려한 안내판도 없고, 정비된 관광지의 흔적도 많지 않지만 오히려 그 투박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이곳은 대규모 인파 대신 나무와 바람, 계곡물과 이끼가 함께하는 진짜 ‘숲의 길’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자신만의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곳은 가히 완벽한 은신처라 할 수 있다.

화암약수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에 비해, 정작 그 길을 걸어본 이들은 드물다. 지형이 험하거나 찾기 어려운 탓도 있지만, 그보다도 이곳은 굳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아도 스스로 존재 이유를 갖는 공간이다. 걷는 이가 많지 않아 숲은 고요하고, 흙은 단단하고, 나무는 더 키가 크다. 그렇게 자연의 시간에 맞춰 숨을 고르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면 ‘걷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는지 몸으로 알게 된다.

 

트레킹 코스 소개 – 자연 그대로, 최소한의 길

화암약수 트레킹 코스는 기본적으로 화암약수터 주차장 → 약수터 → 마차리계곡 상류 → 덕풍계곡 입구로 이어지는 왕복형 코스이며, 총 거리 약 4km 내외로 구성되어 있다. 수치로만 보면 짧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코스는 단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특유의 깊은 계곡지형과 숲의 밀도를 체감할 수 있는 코스로 평가받는다. 또한 인공구조물이 거의 없는 것이 이 코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길 자체가 자연의 흐름을 따르기 때문에 ‘걷는다’기보다는 ‘자연 속을 흐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초입은 넓고 평탄한 흙길로 시작된다. 초여름에는 연둣빛 신록이 머리 위를 덮고, 가을엔 사방이 단풍으로 물든다. 길 양옆으로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고,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와 계곡물 흐름은 배경음악처럼 느껴진다. 약 20분 정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암약수터에 도착하게 된다. 오래된 정자 옆으로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가 있는데, 쇳맛이 강한 탄산수로 처음 마시는 사람에게는 낯설지만, 두세 번 마셔보면 그 진한 맛에 익숙해진다.

약수터에서부터 이어지는 후반부는 숲길의 밀도가 더 짙어지고, 울퉁불퉁한 바위 구간이 많아진다. 이 구간에서는 트레킹보다는 소규모 산행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여름철에는 바위 위로 졸졸 흐르는 물길을 따라 걷거나, 물가에 발을 담그며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특히 마차리계곡 상류에서 덕풍계곡 입구까지의 구간은 방문객이 거의 없어 조용하며, 마음속까지 정화되는 듯한 맑은 공기와 풍경이 압도적이다. 이 길은 도전이 아니라 깊은 호흡을 위한 길이다.

 

약수의 전설과 아리랑의 정서가 깃든 숲

화암약수는 단순한 자연 명소가 아니다.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 말엽, 병약한 한 선비가 유배되어 이곳에 살던 중, 우연히 이 물을 마시고 건강을 되찾았다는 이야기다. 이후 사람들은 이 샘을 ‘화암신약수’라 불렀고, 병을 낫게 하는 샘물로 추앙하게 되었다. 지금도 정선 지역 어르신들 중에는 이 약수를 병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 일상처럼 마시는 이들이 많다. 탄산 성분이 강해 피로 회복에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도 철분, 칼슘, 마그네슘 등의 미네랄이 풍부하다.

그런가 하면 이곳은 정선 아리랑의 정서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걷는 길, 때로는 홀로 말없이 걷는 길. 이런 길 위에서 자연스럽게 입가에 맴도는 것은 ‘아리랑’의 멜로디다. 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오래된 민요가 나무 사이에서 들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과거엔 힘겨운 노동을 끝낸 마을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며 아리랑을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길은 단순한 등산로를 넘어, 사람들의 삶과 감정이 쌓인 장소가 되어 있다.

이 숲길의 또 다른 특징은 ‘말없이 걷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어폰도, 휴대폰도 없이 그저 나무와 흙길을 따라 조용히 걷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서로 눈인사를 나누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지만, 어쩐지 그 안에서 더 깊은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사연과 고요를 지니고 이 길을 걷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은 트레킹이라기보다 ‘내면을 돌아보는 순례길’에 더 가깝다.

 

불편함 속에 피어나는 진짜 여행

화암약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대중교통은 하루 몇 번 없는 농어촌버스뿐이고, 자차가 아니면 접근이 어렵다. 편의점 하나 없고, 식당도 많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이곳을 더 빛나게 한다.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이기에, 그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더 깊고, 더 오래 기억된다. 진짜 여행이란 때로는 조금 불편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곳은 계절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봄에는 생명력 넘치는 신록이, 여름엔 시원한 계곡이, 가을엔 단풍이, 겨울엔 고요한 설경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10월 중순쯤에는 붉은 잎들이 숲길을 온통 물들이고, 낙엽이 바닥을 채워 마치 붉은 융단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눈이 오는 날이면 이 숲길은 또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변신한다. 적막한 흰 숲길 위를 걷는 기분은 직접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트레킹을 마치고 나면 인근 마을의 식당에서 따뜻한 산채비빔밥이나 곤드레밥 한 그릇으로 마무리해보자. 맛있는 한 끼와 함께, 마음속까지 채워진 듯한 만족감이 스며든다. 그저 ‘숨은 명소’ 하나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한 조각을 발견한 듯한 기분. 정선 화암약수 트레킹은 바로 그런 여정을 선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