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덕유산 품속, 조용히 숨어 있는 옛길의 시작
전북 무주, 그중에서도 덕유산 자락 아래 펼쳐지는 구천동 계곡은 예로부터 ‘호남 제일의 절경’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자연미를 자랑한다. 그중 ‘구천동 옛길’은 옛날 선비들이 덕유산 자락을 따라 걸으며 심신을 수양하던 길로,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숲길이기도 하다.
이 길은 덕유산국립공원 초입인 구천동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해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약 6km 구간으로, 왕복 기준으로는 12km 내외가 소요된다. 전체적으로 완만한 경사와 흙길, 계곡을 끼고 조성된 나무 데크가 어우러져 있어 산을 타는 느낌보다는 ‘자연 속 걷기’에 가깝다. 도보로 3~4시간이면 충분히 왕복이 가능하며, 중간중간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와 정자, 약수터도 잘 마련되어 있다.
‘옛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길은 오래전부터 무주 지역 주민들이 백련사나 향적봉으로 향할 때 이용하던 길이었다. 구불구불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좁은 산길은 선인들이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걸었을 듯한 정취를 품고 있다. 지금은 잘 단장되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되었지만, 그 속에 흐르는 ‘시간의 향기’는 여전히 진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 향기 덕분에 이 길은 여느 관광지와는 다른 고요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청정 계곡과 함께 걷는 오감의 길
구천동 옛길의 백미는 바로 ‘계곡과 함께 걷는 길’이라는 점이다. 길의 거의 대부분이 구천동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어, 걷는 내내 맑은 물소리를 벗 삼을 수 있다. 물줄기는 계절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봄과 여름에는 폭포처럼 힘차게 흘러내리고, 가을에는 잔잔한 수면 위로 낙엽이 떨어지며, 겨울이면 일부 구간은 얼어붙어 눈꽃과 어우러진다.
특히 이 구간에는 ‘삼공리 삼공’이라 불리는 세 개의 작은 폭포와 소(沼)가 유명하다. ‘구천동 33경’ 중 일부로 손꼽히는 이 삼공은 예로부터 무주 8경에도 포함된 명소로, 수많은 여행객들이 사진을 남기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흰 비단을 펼친 듯 시원하며, 인근에 서식하는 수서 곤충과 물고기, 청개구리들도 생태적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길을 걷다 보면 계곡 위로는 짧은 나무다리가 설치되어 있고, 그 위를 지나며 내려다보는 물빛은 그야말로 청정 그 자체다. 주변 숲은 참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등이 어우러져 있으며, 계절에 따라 숲의 색이 시시각각 변한다. 여름엔 짙은 녹음, 가을엔 오색단풍, 겨울엔 설경과 고드름으로 길 전체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이 길은 ‘자연 명상 길’로 불릴 만큼 조용하다. 상업적인 요소나 인파로 가득한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한적한 숲속을 천천히 걷는 사람들만이 이 길을 채운다. 그래서 이 길은 단순한 트레킹 코스를 넘어서,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걷는 치유의 길’로 손꼽힌다.
숲속 문화와 전통이 공존하는 풍경
구천동 옛길은 자연뿐만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인문적 풍경도 깊이 있다. 길의 중간 지점쯤에서 만날 수 있는 ‘백련사’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고찰로, 그 이름처럼 사철 맑은 물과 흰 연꽃이 떠오르는 차분한 기운을 품고 있다.
백련사는 고려 말 고승 무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오랜 세월 동안 덕유산의 수행처로 사랑받아왔다. 특히 백련사 뒷마당에 서 있는 수령 500년 이상의 느티나무는 이 길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돌탑들이 사찰 입구를 따라 이어진다. 백련사에서는 숙박형 템플스테이도 운영하고 있어, 하루쯤 머물며 자연과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구천동 옛길에는 전통 약수터도 두세 곳 존재한다. 이 약수는 수온이 낮고 광물질이 풍부하여 과거에는 주민들이 먼 길을 걸어서라도 물을 길어 가던 귀한 물이었다. 지금도 등산객이나 트레커들이 빈 병을 들고 와 물을 담아 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길 곳곳에는 시인의 글귀와 전통 시조, 옛사람들의 여행기를 새겨 넣은 작은 안내판도 설치돼 있다.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자연을 걷는 그 순간, 걷기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감성의 흐름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구천동 옛길은 자연과 역사,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있어 걷는 이에게 풍부한 정서적 충만함을 선물한다.
걷기 좋은 시기와 여행 팁, 함께 둘러볼 명소
구천동 옛길은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가장 걷기 좋은 시기로는 5월과 10월을 꼽을 수 있다. 5월에는 신록이 우거지고, 10월에는 단풍이 절정에 달한다. 특히 가을철 구천동 계곡을 따라 떨어지는 단풍잎은 눈을 의심할 만큼 화려하다.
트레킹을 위해선 기본적인 운동화 또는 등산화를 착용하고, 물과 간단한 간식, 선크림, 모자 등을 챙기는 것이 좋다. 길 자체는 정비가 잘 되어 있지만, 일부 구간은 물가를 지나야 하므로 발목이 젖을 수 있다. 또한 백련사 이후 향적봉까지 오르려면 경사가 꽤 가파르므로, 옛길만 걷고 돌아올 경우 백련사에서 회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천동 옛길을 다녀온 뒤에는 인근의 무주읍 또는 덕유산 리조트 일대로 이동해 숙박과 식사를 함께 즐기는 것도 좋은 코스다. 무주에는 곤드레나물밥, 더덕구이, 표고버섯전골 등 지역 산채음식이 많으며, 특히 무주 와인으로 유명한 머루 와인을 체험하거나 구입할 수도 있다.
함께 둘러볼 명소로는 ‘무주 양수발전소 전망대’, ‘적상산 사고지’, 그리고 무주의 대표 겨울 관광지인 ‘무주 덕유산 스키장’ 등이 있다. 여름철엔 물놀이, 가을엔 단풍 산행, 겨울엔 설경 트레킹 등, 구천동 옛길은 사계절 모두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무주의 중심 자연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구천동 옛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는 조용하고 풍요로운 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기에, 여전히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진짜 ‘휴식과 사색의 길’을 찾는 이들에게 무주는 이 길을 선물처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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