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명산 황매산, 그 뒷길에 숨겨진 둘레길 이야기
경남 합천과 산청의 경계에 솟은 해발 1,108m의 황매산은 국내 5대 철쭉 명산으로 이름난 곳이다. 매년 5월이면 산 전체가 분홍빛 철쭉으로 물들며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명소이지만, 그 화려함 뒤편에는 조용하고 사람의 발길이 드문 ‘황매산 철쭉평원 뒤편 둘레길’이 있다.
이 둘레길은 철쭉제나 드론축제가 열리는 주요 구간과 달리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숲길이지만, 황매산 본연의 자연미를 가장 깊고 조용하게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황매산 정상 부근 전망대나 철쭉 군락지에 머무르기 때문에, 이 둘레길은 인파를 피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공간이다.
이 둘레길은 ‘황매산오토캠핑장’을 기준으로 시작해 산중턱을 감싸듯 이어지는 경로로, 왕복 약 6km 정도의 거리다. 천천히 걸으면 2시간 반~3시간 정도 소요되며, 급경사나 험한 바위길 없이 완만한 흙길과 숲길, 들길로 구성돼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다. 특히 황매산의 다양한 표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봄철 철쭉을 보고 돌아서기엔 아쉬운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코스다.
자연의 속삭임이 흐르는 둘레길의 풍경
황매산 철쭉평원 뒤편 둘레길은 ‘고요함’이 지배하는 길이다. 한 걸음 걷기 시작하면 자동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사라지고 오직 자연의 소리만 남는다.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 풀벌레 울음소리, 나무 위에서 노니는 새들의 지저귐이 걷는 이의 귀를 적신다.
둘레길은 대부분 소나무숲과 참나무 군락을 지나며, 중간중간 야생화가 자생하는 풀밭이 나타난다. 5월 말부터는 철쭉의 잔향이 이어지고, 6~7월에는 초록빛이 우거진 청량한 분위기를, 가을에는 붉은 단풍과 억새가 어우러진 고즈넉함을 보여준다. 겨울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이 포근하게 느껴지고, 눈이라도 내리면 설화가 아름답게 수놓아진 풍경이 연출된다.
길의 중간 지점에는 작은 전망바위와 평상이 있어,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물 한 모금 마시며 황매산의 능선을 감상하기 좋다. 이곳에서는 황매산 정상 능선과 산청 방면 계곡이 한눈에 펼쳐지는데, 맑은 날이면 멀리 지리산 자락까지도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둘레길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눈을 들이면 깊은 울림과 넉넉함이 있는 길이다.
황매산의 철쭉이 화려한 쇼라면, 이 뒤편 둘레길은 조용한 시 한 편 같다. 오래 걷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정돈되고, 무언가를 채우려 하지 않아도 이미 충만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길은 사진보다, 풍경보다 ‘걷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길이다.
둘레길 위에 펼쳐진 작은 마을과 역사 흔적들
황매산 둘레길의 또 다른 매력은 중간중간 만나는 작은 쉼터와 전통의 흔적들이다. 예부터 이 산 자락에는 몇몇 소규모 농가와 촌락이 있었다. 현재는 대부분 사람들이 떠나고 비어 있지만, 오래된 돌담과 폐가, 무너진 토담 집들이 둘레길 옆으로 남아 있어 흘러간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특히 ‘임도 쉼터’라고 불리는 구간 주변에는 작은 돌탑과 기도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 일대는 예전 광부들의 작업 통로로도 이용되던 곳이다. 황매산은 1960~80년대까지 석재를 채굴하던 지역이었고, 그 흔적이 아직도 둘레길 인근에 일부 남아 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 풀과 이끼로 덮였지만, 당시 사람들의 땀과 삶이 있었음을 상기시키는 풍경이다.
또한 길의 말미에는 작은 약수터가 하나 있다. 수량은 많지 않지만 지하암반수를 그대로 뽑아올리는 이 약수는 시원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지나가던 등산객들이 빈 물통에 담아가기도 한다. 이 약수터 옆에는 평상이 설치돼 있어 점심을 먹거나, 간식을 나눠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황매산 둘레길은 이처럼 단순한 자연길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역사와 삶이 얽혀 있는 ‘시간의 터널’ 같은 공간이다. 오래된 것들이 버려진 것이 아닌, 그대로 남아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길. 그래서 이 길은 자극보다는 잔잔함으로, 속도보다는 온기로 기억된다.
황매산 둘레길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팁과 인근 볼거리
황매산 철쭉평원 뒤편 둘레길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른 아침 방문을 추천한다. 특히 봄과 가을, 황매산은 일출 명소이기도 하므로 철쭉평원이나 철쭉군락지에서 해돋이를 보고 둘레길로 내려가는 루트를 택하면 하루가 더 특별하게 시작된다. 오전 시간대에는 햇살이 숲을 비추는 각도도 아름다워 사진 촬영에도 적합하다.
걷기에 앞서 준비해야 할 것은 간단한 간식, 식수, 그리고 트레킹화다. 황매산은 고도가 제법 있기 때문에 기온차가 크고, 둘레길 후반부에는 그늘이 많아 아침에는 서늘할 수 있다. 여름엔 벌레 퇴치제, 겨울엔 아이젠 준비도 유용하다. 길은 명확하게 표시돼 있어 초행자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으나, 일부 구간엔 이정표가 부족하므로 GPX 앱 활용도 추천된다.
황매산 일대는 인근 합천 관광지와 연계하면 더욱 풍성한 일정이 된다. 대표적으로는 ‘합천 해인사’, ‘가야산 자락 산책길’, ‘영상테마파크’ 등이 있다. 해인사는 차로 40분 이내 거리에 있어 둘레길 트레킹 후 종교적 고찰과 문화유산 탐방까지 이어지며 깊이 있는 여행이 가능하다.
또한 황매산 오토캠핑장에서는 야영이나 차량 캠핑도 가능하므로, 별밤과 새벽 풍경을 함께 즐기고 싶은 여행자에게는 1박 2일 코스가 적합하다. 합천읍에서는 돼지국밥, 재첩국, 산나물정식 등 지역 먹거리가 풍성하게 제공되어, 걷기의 피로를 맛으로 풀 수 있다.
황매산 철쭉평원 뒤편 둘레길은 단연코 ‘조용한 걷기의 미학’을 느끼게 하는 길이다. 군중과 화려함은 없지만, 그 대신 자연의 속도와 사람의 체온을 담은 이 길은, 오랜 기억으로 남을 또 하나의 숨은 명소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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